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 내가 마속이다/등장인물 (문단 편집) === 황실 === * '''[[조식]]''' 위의 진왕(陳王).[* 여기서 약간 옥의 티가 있는데, 장완이 조식을 두고 진사왕이라고 칭한다. 조식이 진왕(陳王)에 봉해진 것은 232년이고, 사왕(思王)은 조식이 죽은 후에 받은 시호이다. 당시 시점은 228년에 벌어진 1차 북벌이 끝나고 1년 가량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조식의 영지는 진이 아닌 동아(東阿)였으며, 따라서 진왕이 아닌 동아왕으로 서술해야 맞는 말이다. 물론 현대인인 주인공이나 소설을 보는 독자들 입장에서야 상관없지만, 명백히 작품 속의 고대인인 장완이 당시 조식을 진사왕이라 부르는 것은 오류.] 제갈량과 서신을 교환하며 역사 논쟁을 벌인다.[* 실제 역사에도 있었던 일이다. 자세한 것은 [[제갈량/삼국지연의|문서]]의 3.2 문단을 참조.] 물론 간첩질이나 정치적 공작이 아니라 순수한 학자로서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당연히 조위 황실에는 비밀로 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다. 제갈량은 조식도 이게 위험한 일인 걸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한다고 웃는데 왜냐하면 '''이것도 못하면 조식의 이름은 세상에서 완전히 잊혀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인공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의 절박함을 정치공작용으로 써먹냐고 제갈량의 사악함에 혀를 내두른다. 본래 조식은 원 역사에서도 형을 제치고 후계자에 걸맞는 인물로 조조의 총애를 받은 재능있는 사람이었다. * '''[[조진]]''' 위나라의 대장군. 위나라 조조의 외척이며 사마의를 경계하고 있다. 상당한 능력을 가진 장군이지만 촉나라의 제갈량, 마속 등의 장수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이 때마다 신하라면 낼 수 없는, 내선 안되는 계책으로 난국을 타개하는 사마의를 미심쩍어 했다.[* 황제가 뒤에 있는데 도박수인 결전을 제안하거나, 자신들의 건국명분을 위태롭게 만드는 유 헌제를 내미는 등. 실제로 헌제의 경우는 위나라 내의 한실 지지 잔존세력을 움직이게 만들어 주살하는 강수를 두게 만들어, 위의 국제적인 위신을 크게 손상시켰다. 게다가 무고한 전예의 가족들을 조정의 체면을 위해 모조리 주살하자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제대로 위기감을 가진 모양.] 사로병진 전투에서는 후방의 진창성에서 전장을 지휘하다가 곽회가 무너지고, 마속과 강유가 공격해오자 몸을 빼서 장합에게 합류, 위연군을 먼저 무너뜨리는 것으로 역전하려 했지만 마속과 제갈량의 행동이 더 빨랐던 탓에 위연과 지원을 온 강유가 버티는 사이에 진창이 넘어가고, 사마의가 패전하고 만다. 이에 병력을 온존해 다시 방어선을 형성하기 위해 분통을 터뜨리며 병력을 무른다. 촉과의 2번째 전쟁과, 요동 방면에서 관구검이 대패하는 등 다시 대전쟁의 조짐이 다가올 때 나이와 심로가 겹쳐 병사한다. 죽기 직전 조예에게 사마의를 경계하라고 조언하지만 사마의를 굳게 신뢰하고 있던 조예였기에 결국 그를 설득하지는 못하고 사망한다.[* 이에 조예는 제갈량을 발굴한 유비를 예로 들며 사마의를 변호했으나, 조진은 밑바닥부터 시작해 무일푼으로 온 천하를 떠돌며 안목을 기른 유비가 인재를 보는 통찰력만큼은 조예보다 뛰어남을 지적했다.] 이후 조예는 죽기 직전에야 조진의 유언을 떠올리고 사마의의 위험성을 짐작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결국 조진의 우려대로 사마씨는 위나라를 찬탈해버리고 만다. * '''[[하후무]]''' 위의 황족. 조조의 딸 청하공주의 남편. 가정에서부터 주인공에게 첫 승리를 헌납한 장본인이다. 촉이 쳐들어오자 어쩔줄을 몰라하며 장안으로 온 걸 후회한다. 본래도 군사에 아는 것이 없었지만 첫 북벌에서 가정의 촉군에게 호되게 당한 후에는 군사부분에서 발을 빼고 싶어했지만 장안에 고위인사를 배치해야 한다는 위의 정책 때문에 실패하고 2차 전쟁에서도 마속에게 속아 위군의 혼란을 더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